쓰고/기고
매일온천
李乾
2015. 4. 7. 23:00
종이와 잉크 냄새로 현기증이 난다. 어서 이 인쇄 골목을 벗어나야 하는데, 미로 같아서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냄새가 약해지는 방향으로 더듬이를 세운다. 돌고 돌아 가까스로 탈출한다. 서울 공기가 이렇게 신선했던가. 상대적 기쁨도 잠시, 어디선가 아저씨 스킨과 싸구려 비누 향이 날아와 코를 간지럽힌다. 향을 따라가니 이발소 봉이 빙글빙글 돌고 있다. 목욕탕이다. 입구에는 누군가 떨어뜨린 듯한 때수건이 널브러져있다. 때수건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목욕탕 이름이 신경 쓰인다. 온천. 서울에 온천이 있었나? 금시초문이지만 사실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석굴암 커피숍’이 있는 동네니까. 확인을 위해 문을 열고 들어선다. 매표소를 흘끔거리며 고민한다. 물어볼까 말까.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 같다. 서울에서 온천을 찾는 놈이 또 있을까? 주인은 동네에 미친놈이 새로 왔다고 생각하겠지. 궁금해 죽는 것 보다 미친놈이 되는 게 낫겠다.
"여기 정말 온천인가요?"
주인이 자신에 찬 눈빛으로 바라본다(이 표정에서 잠시 기대를 했다)
"온천물만큼 물이 좋아요."
"아... 그러니까, 그... 수돗물이라는 거죠?"
"물이 엄청 좋아요."
어떤 질문에도 물이 좋다는 말만 반복하는 주인을 뒤로하고 문을 나선다. 이런 옘병.
※ 이 글은 '걷는 골목 이야기 - 월간 재미로(路)'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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