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늘

8월 27일 목요일

李乾 2015. 8. 29. 02:23


네번 째 수업이 있는 날. 


지난 주, 의도와는 다르게 트로트 전문 노랫말쟁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노래를 만드는 8인에 당첨되어서 앞날이 깜깜했다. 사실 나는 노래방에서 트로트로만 2시간 단독 공연이 가능한 트로트 장인이고, 이것이 밝혀지면 여지없이 트로트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아 더욱 심란했다.  하지만 나의 입은 어느 새 견인된 내 마음을 흥얼거리고 있었으니, 과연 본능은 이성에 앞서는 것인가보다. 미완의 가락이지만 현철 아저씨 뺨을 쓰다듬을 정도는 되었다. 그럼에도 평가 앞에서는 주눅드는 것이 사실이어서 수업 때 내 이름이 불리지 않길 바랐다. 정옥과 기영 두 사람의 노랫말에 음이 붙는 과정은 몹시 흥미로웠다. 요조는 쇼생크 탈출의 팀 로빈스가 숟가락으로 감옥 벽을 파듯이 아주 조금씩 멜로디를 만들어냈고, 허기타는 모건 프리먼처럼 요조를 도와 열심히 땅굴을 팠다. 정신을 차렸을 땐 모두 숟가락을 들고 땅굴을 파고 있었는데, 결국엔 정말이지 굉장한 노래가 만들어졌다. 탈옥에 성공한 요조는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었다. 수업 후 처음으로 뒤풀이를 했다. 우리는 단체 미팅이라도 하듯 양 쪽으로 갈라서 상대방을 열심히 탐구했다. 내 앞의 유정은 생글생글 웃으며 맥주를 물처럼 들이부었다. 그리고 연신 시계를 확인하며 막차 시간까지 좀 더 많은 맥주를 소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맥주는 그냥 물이잖아요. 빨리 비우고 한잔 더 마셔요.'등의 명언을 내뱉으며 마시고 또 마셨다. 과연 될성부른 떡잎이다. 맥주집 주인장도 그녀의 명언에 감동했는지 맥주를 서비스로 내오며 화답했다.  술먹으면 말이 많아지는 나는 먼지만도 못한 말을 마구 날렸는데, 어찌 된 건지 듣는 이들이 하하호호 웃었다. 참 착한 사람들이다. 회비 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쏘겠다던 승훈은 계산대에서 왠지 씁쓸한 미소를 짓는 것 같아 미안했다. 자리가 파한 후에 말이 더욱 많아진 나는 은행에 다닌다는 인혜에게 최저금리로 대출을 이빠이 땡긴 후 사표를 내라고 다그쳤고, 회사도 들어가지 않은 만수에게 회사따위 들어가지 말라고 막말을 했다. 우리는 합정역 오거리에서 헤어졌는데, 방배까지 걸어가겠다는 정옥은 아침 해를 보게 될 것 같았고, 술이 조금 되보이는 만수는 버스를 잘못 타서 돌고 돌아 다시 합정역에 올 것만 같았다. 정옥을 택시태워 보내고 만수를 우리집에 재웠어야 했다는 후회를 3초 정도 하다가 집어치웠다. 요즘 운동 부족이라 달려서 귀가했다. 




* 상상마당 '노래하기위해 살고있는 글자들' 수업의 과제로 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쓴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