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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Tour De Mont blanc) 여행기 8

李乾 2014. 12. 16. 21:30


오전 8시에 알람을 맞추어 놓았지만, 7시가 되자 눈이 떠졌다. 


부스럭거리는 옆 자리를 돌아보니 백발의 노인이 조심스레 짐을 챙긴다. 


잠을 깨기 위해 커튼을 걷었는데 창문으로 그림이 보인다.





'눈 있는 곳은 이제 그만 좀 가.'


여행을 오기 전 이 말을 했던 누군가가 생각났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풍경을 보는 순간 왜 계속해서 눈을 찾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눈이 갓 구운 빵만큼 좋다.



비몽간에 입을 벌린 채 창밖을 보고 있자니 옆자리의 노인이 말을 건네온다. 


'저건 xxx이고, 그 옆의 봉우리는 xxx야.'


'그렇군요. 아침에 눈을 떠서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정말 환상적이네요.'


그가 창 밖을 바라본 채 미소로 맞장구를 친다.


봉우리의 이름을 되뇌다 입에 잘 붙지 않아 1번, 2번, 3번 멋대가리 없게 지어버렸다.


배가 신호를 보낸다. 배꼽시계는 시차도 없다. 



주방으로 내려가니 다들 식사 준비에 한창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성스러운 의례다.


어제 시내에서 사온 냉동볶음밥을 꺼내 성례에 동참한다.


한국 등반팀으로 보이는 이들은 상다리를 휘게 하려나보다.


밥, 라면, 죽, 소세지, 참치, 김치, 고추... 여행의 마지막 날인지 모든 음식이 상 위에 오른다.


나는 반찬조차 없다. 괜한 자존심에 별미를 맛보는 듯 한 입 가득 볶음밥을 물었으나 기대한 맛과는 정반대다.


한쪽 구석에 앉아 지구 종말을 기다리는 표정으로 냉동볶음밥을 퍼넣었다.


아랑곳않고 성찬을 즐기던 이들이 식사가 끝날 무렵 내게 말을 걸어온다. 


'한국분이세요?'


내가 일본인인줄 알았다고. 


그제야 음식을 공유한다. 나는 냉동밥을 고이 재포장해 한쪽 구석으로 밀었다.


줄줄이 비엔나 하나가 이렇게 만족을 준단 말인가. 음식의 신비는 실로 놀랍다. 


그들은 나에게 한바탕 질문세례를 쏟아붓고는 하하호호 떠들었다. 


그리고 남은 라면 두 개를 선물로 주었다. 


며칠 뒤 이 라면의 활약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들에게 큰절이라도 했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