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복수
나약한 복수(Un borghese piccolo piccolo, 1997)
마리오 모니첼리,Mario Monicelli 감독
도로 포장 작업을 본적이 있다.
아스팔트가 섞인 자갈을 붓고 롤러로 왔다갔다 눌러주는 모습이 재미있어 한참을 봤었다.
고온에 의해 찐득해진 아스팔트는 롤러가 오갈 때 마다 조청처럼 늘어졌다.
뻑뻑한 검은 액체는 석유제품 특유의 냄새와 함께 각인되었다.
'나약한 복수'는 부정(父情)에 대한 영화이다.
주인공의 부정은 아스팔트를 연상케한다.
농도 짙은 아버지의 사랑이 엿가락처럼 찐득하게 늘어진다.
아들을 취직시키기 위해서 상관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밤을 새워 아들의 입사 서류를 준비한다.
프리메이슨을 믿으면 아들을 취직시켜주겠다는 상관의 말에 자신의 종교마저 부정한다.
인생의 전부가 아들을 향해 있다.
그런데 아들은 입사 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 은행 무장강도에게 살해당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무력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좋은 묘지에 묻어주는 것 뿐이었다,
부정은 경찰서에서 아들을 죽인 범인을 발견하며 복수심으로 치닫는다.
그는 한 눈에 범인을 알아봤지만 용의자로 지목하지 않는다.
범인을 미행해 집 앞에 잠복해있다가 펜치로 머리를 후려쳐 납치, 감금한다.
노후를 준비했던 시외의 오두막. 피떡이 된 범인을 의자에 앉혀 꽁꽁 묶는다.
상처를 치료하고 물을 먹인다. 그리고 다시 폭행한다.
그가 외출한 사이, 범인은 죽고 만다.
송장 앞에서 절규하는 아버지.
부정의 복수는 나약했다.
범인을 묻기 위해 땅을 파는 아버지의 삽질로 영화는 끝난다.
내가 본 삽질 중에 가장 슬픈 삽질이었다.
훗날 아버지가 된다면 다시 한 번 찾게될 듯한 영화.
+ 오래된 영화를 보는 재미 중의 하나는 음악인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매우 재미있다.
극적이고 적나라한 음악을 듣고 있자면 경쾌하기까지 하다.
+ 감독인 마리오 모니첼리는
지병으로 입원중, 이렇게 구질하게 튜브를 코에 꽂고 사느니 존엄하게 죽겠다며 병원 창문으로 투신,
95세의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유감독님 블로그 발췌)
+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도 이 영화를 참고했다는 DRFA 유감독님의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