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B(Tour De Mont blanc) 여행기 9
만찬과 웃음으로 충만했던 식사가 끝나니 잊었던 것이 생각났다.
짐.
그래, 나는 오늘 길을 떠나야 하는 사람이지.
황급히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내 짐 도착했니?'
'잠깐만. 오, 그래 도착했어'
'다행이네. 고마워. 여기에는 언제쯤 오니?'
'음... 오후 1시가 넘어야 할거야'
'1시? 더 빨리 올 수는 없어? 나는 12시 전에 나가야해'
'미안...'
기다림의 연속이다. 1시까지는 3시간이 넘게 남았다.
카메라 렌즈 필터에 붙은 먼지를 하나씩 세면 3시간이 금방 갈까.
고개를 젓고 다시 주방으로 향했다.
룸메이트인 할아버지에게서 냉동볶음밥을 퍼넣던 내 모습이 보인다.
라면도 챙길 겸 맞은편에 슬쩍 앉았다.
빵 한 조각 건내는 그에게 손사래를 치고는 몇 마디 건넸다.
그는 90년(정확하지는 않다)에 23시간이 걸려 몽블랑에 올랐다고 했다.
그리고 전망대가 있는 에귀 디 미디에서 메르 데 글라스(몽블랑에서 가장 넓고 긴 빙하)를 따라 스키를 타고 내려왔단다.
왠지 월남 스키부대 같은 모험담을 듣고 있는 기분이었지만, 그의 진지한 눈빛에 감탄사를 섞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어디 안가니?'
'TMB를 할 예정인데, 공항에서 짐을 분실했어요. 짐을 기다리는 중이에요'
그는 탄식과 함께 미간을 찌푸리더니 미안함을 연신 표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내 차림을 훑는 그의 눈빛에 측은함이 서려있다.
하긴, 이 날씨에 여름 바지와 긴팔 티셔츠 하나 입고 있는 건 샤모니에 나뿐이다.
갑자기 그가 윗옷을 벗더니 건네준다.
안에는 따뜻해서 괜찮다고 했지만 어서 입으란다.
빨간 폴라폴리스 짚업은 색깔 만큼이나 따스하다.
그리고는 기다리라며 위층을 향했다.
잠시 후 다시 나타난 그가 검은색 점퍼를 내민다.
나는 이방인에게 이렇게 따뜻했던 적이 있었던가.
가방을 잃고 친구를 얻었다.
무언가를 잃으면, 무언가를 얻는다.
여행은 늘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