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협연

쓰고 2014. 9. 22. 23:05






졸린 눈을 억지로 치켜세우듯이 비가 내린다. 

본격적으로 책에 몰입하려는데 비가 지붕을 두드리며 귀를 열어버린다. 

그리고는 금세 그친다. 

내리고 멎기를 몇 차례 반복. 

이제는 '이쯤 되면 비가 지붕을 때릴 시간이 되었는데...'하는 생각에 오히려 내가 귀를 연다. 

책 읽기를 아예 포기하고 비의 연주를 듣기로 한다. 


7평 남짓한 함석지붕은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두께가 일정한데도 위치마다 소리가 다르다. 

퉁퉁, 통통, 팅팅, 턱, 투투팅...

동시다발적으로 들리는지라 어느 부분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는 스스로 강약을 조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뭇잎을 타거나 가지를 타고 지붕을 두드려 악기를 점검한다. 

가볍게 퉁퉁대며 조율을 마치자 본격적인 연주가 시작된다. 

타악기만으로 구성된 악장. 지붕의 경사에 따라 파트가 나뉜다. 

마룻대는 베이스를 담당한다. 턱턱대며 두껍고 강하게 리듬을 잡는다. 

양쪽 사면은 소프라노와 테너이다. 팅팅탕탕 주거니 받거니 멜로디를 날카롭게 이끈다. 

알토 처마받이가 탱탱거리며 감칠맛을 더한다. 

한차례 강한 소나기로 연주는 절정에 이른다. 변주와 불협화음을 현란하게 오가며 신이 나게 몰아친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이다. 울림이 잦아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한 차례 파도가 들이닥친다. 

연주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환호로 비와 지붕에 화답한다. 앵콜을 외쳐보지만, 메아리가 없다. 아쉬울 때 끝내야 한다는 걸 아는 걸까. 


여운이 가시지 않아 문을 열고 나왔다. 처마에서 연주자들이 하나둘 내려온다. 

맥 풀린 오후를 단단히 조여준 그대들에게 박수를. 



Posted by 李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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