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로 가는 비행기는 몹시 추웠다.
종아리 아래로는 마치 냉풍욕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다 하릴없이 창 밖의 구름을 세었다.
구름은 듬성듬성 펼쳐졌다가 주단처럼 흘러내렸다.
점점 옅어지며 꼬리를 비행기 몸체 쪽으로 붙여 사라지는 듯 하다가 다시 나타났다.
구름의 모양과 밀도가 바뀌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고, 곧 착륙했다.
Baggage claim으로 가 툭툭 뱉어지는 수화물을 기다렸다.
벨트 위를 돌아가는 수화물이 점점 없어지더니, 기계는 더 이상 짐을 뱉어내지 않았다.
내가 짐을 실은 비행기가 중국남방항공이라는 사실이 새삼 생각났다.
인터넷에서 본 '최악의 수화물 분실율, 중국남방항공'이라는 문구가 머리를 스쳤다.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기 시작했지만, 벨트 주변에서 여전히 짐을 기다리는 열댓 명의 사람을 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십분 후, 나를 포함한 열댓 명은 패잔병처럼 항공사 고객센터로 이동했다.
고객센터의 직원은 온화했다.
이런 일은 다반사라는 듯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 어떻게 왔니.
- 내 짐이 도착하지 않았다.
- 항공 스케쥴좀 보여줘.
툭탁툭탁 자판을 두드리더니, 그제야 내가 원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 니 짐은 베이징에서 없어진 것 같아.
- 같아? 있긴 있는건가?
- 아마도. 내일 아침 제네바로 오는 비행편에 올 수 있도록 할게.
내일 아침이라니. 나는 지금 프랑스 샤모니로 가야 한다.
- 그럼 짐이 오는대로 호텔로 보내줄게. 주소를 알려줘.
답답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호텔 주소를 뒤적거리는데 전화가 왔다.
공항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예약 택시가 문득 생각났다.
급히 전화를 받아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다시 주소를 찾아 직원에게 건넸다.
- 내일 아침이라면 몇시인가. 나는 오전 중에 호텔을 떠나야 한다.
- 글쎄, 그건 몰라. 정오에서 두시 사이정도 될거야.
- 그럼 나는 짐이 도착할 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직원은 잠시 기다리라며 온화한 미소를 남기고 창고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는 작은 손가방을 들고 와 나에게 건넸다.
스카이팀 로고가 박힌 반팔 티셔츠와 여행용 세면도구 세트가 들어있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그는 더욱 온화하게 미소지었다.
스키폴 공항에서 '노인과 바다'를 읽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쓰고 > TMB' 카테고리의 다른 글
TMB(Tour De Mont blanc) 여행기 7 (4) | 2014.02.10 |
---|---|
TMB(Tour De Mont blanc) 여행기 6 (4) | 2014.02.06 |
TMB(Tour De Mont blanc) 여행기 4 (0) | 2014.02.04 |
TMB(Tour De Mont blanc) 여행기 3 (0) | 2014.01.26 |
TMB(Tour De Mont blanc) 여행기 2 (0) | 2014.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