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엘 발음이 어색하다 했다.
"자, 혀 끝을 앞니 뒤쪽에 붙이면서 발음하는거야. 이빨과 잇몸 사이에 갖다 대면서 이렇게, 엘- 엘-."
"엘- 엘-."
"혀를 이빨 사이로 내미는게 아니고 이빨 뒤에 붙여야한다니까? 다시 해봐."
"에얼- 어엘-."
"너무 세게 붙였잖아. 그리고 두 번째는 알 발음 같았어. 왜 이걸 못하는거야? 자, 그럼 두 번에 나눠서 해봐. 에-를 한 다음 혀만 윗니 뒤에 붙이면서 이렇게 에-엘 에-엘."
"에-엘 에--엘."
"또 혀가 앞니 밑으로 나왔어."
"근데, 이게 그렇게 중요한거야?"
"응 중요해. 그리고 넌 할 수 있어. 내가 하게 만들어줄거야."
그녀는 유려한 엘 발음을 마치 나의 숙명인 듯 말했지만, 사실은 내가 엘 발음이 안된다는게 재미있어서였다. 철두철미와 완벽주의로 점철된 나의 구멍을 드디어 찾았다나. 엘 발음을 처음 들었을 때 그녀는 카페 밖으로 뛰쳐나가 유레카를 부르짖었다. 아르키메데스의 후예를 보는 듯 했다. 그녀는 엄한 가정교사처럼 굴었다. 생각날때마다 엘 발음을 교육했는데, 하루에 열 번 정도 그것을 생각했다. 어느 날은 도저히 안되겠다며 혀를 윗니 뒤에 붙인 채 자라는 엄명을 내리기도 했다. 사실 나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엘 발음 따위는 쌍쌍바를 잘 쪼개는 것보다 하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 발음을 완벽하게 해내는 순간 왠지 그녀가 흥미를 잃고 떠나버릴 것 같아서 열심히 연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의 화산같은 교육열 덕분에 나의 엘 발음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부작용이 있었으니 국어의 ㄹ받침을 엘 처럼 발음하게 된 것이다.
"저기, 나 ㄹ받침 발음이 이상해졌어. 엘 처럼 발음한다구."
그녀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며 엘 발음에만 집중하라고했다.
약 한 달 뒤, 나는 결국 엘 발음을 완벽히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3일 후, 마치 기다렸다는듯이 그녀가 연락을 끊었다.
일년이 지난 지금도 유창한 엘 발음을 유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큰 문제는 아니지만, 프리젠테이션을 많이 하는 나에게는 곤란한 일이다. 이런 말을 할 때는 정말 난처하다.
"올해 목표 달성 미달 부서는 분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녀가 나의 ㄹ받침 발음을 돌려주길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