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는 날

쓰고/이야기 2015. 5. 31. 00:16


우리 그만 만나

설렁탕 먹다말고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 코너 없어진지 오래야 철지난 개그하지마

너는 테이블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더니

가방을 움켜잡고 휙 가버렸다

설렁탕을 고작 세 숟갈 떴을 뿐인데

깍두기가 애처로웠다


내게 모든 계산을 하도록 했던 너는

그날은 밥값을 내고 갔

네것만


나는 뭘 잘못한걸까


식당을 나오니 눈물이 났다

걸어가며 엉엉 울었다

눈물이 앞을 가리길 바랬는데

그날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눈물은 고이기도 전에 날아갔다


억울해서 버스 정류장에 앉아 울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고 버스가 많이 지나갔다

어떤 버스도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여기 있는데

계속해서 버스가 지나갔다

눈물을 멈추고 돌아보니

택시 승강장이다


대로변을 무작정 걸었다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우네일아트, 미용재료 화장품, 콩나물국밥, 토종한우

남긴 설렁탕이 생각났다

배가 고팠다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김밥천국에 들어갔다

아줌마 여기 떡볶, 아니 라볶이 하나 주세요

시뻘건 라볶이

두 젓가락 먹다가 손이 멈췄다

라볶이는 니가 좋아했다

또 눈물이 났다

라볶이를 옆으로 밀고 엎드려서 엉엉 울었다


울다 지쳐 시계를 보니 열두시다

아차, 막차를 타야 하는데

부앙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601번 버스가 지나간다

달리고 달린다

이번엔 버스 문이 열렸다


털썩

주저앉은 몸뚱아리 위로 졸음이 쏟아진다

나 막차 안놓치고 잘 탔어 걱정하지마

얘기를 해야 하는데

너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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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李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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